조글로로고
연변대학 발전에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은 박규찬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6월28일 08시30분    조회:438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규찬
박규찬은 연변대학의 제2임 교장이다.

 

1955년 5월, 주은래총리는 박규찬을 연변대학 부교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그의 령도재능에 대한 충분한 긍정이고 금후 대학사업에서 더욱 큰 공헌을 할것을 바라는 신임과 기대였다. 박규찬은 연변대학의 교학사업과 연구사업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교육자였다.

박규찬은 조선민족대학교육과 중국소수민족대학교육의 원로급 교육가로 되기에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박규찬의 교육리념은 중국 민족대학교육의 연구와 발전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연변대학 전임교장 박문일은 《조선족 저명한 교육가 박규찬을 회억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규찬교장의 교육리념을 아래와 같은 5가지로 개괄했다.

첫째, 당의 교육방침과 민족정책을 지도사상으로 한다.

둘째, 인재배양에서 학생의 혁신정신을 배양하는것을 대학교육의 주요한 임무로 한다.

셋째, 대학교육의 개방성을 대학운영의 주요한 경로로 한다.

넷째, 지방건설에 이바지한다.

다섯째, 민족성을 대학운영에서의 주선으로 한다.

박문일교장은 민족성을 주선으로 하는 박규찬교장의 연변대학 운영리념을 강조하면서 그 공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박규찬교장의 교육리념은 연변대학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조선족 교육문화사업에 아주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연변대학을 중국에서 조선어와 조선력사연구의 중심으로 부상시켰고 조선족의 기초교육을 발전시켜 조선족인민의 평균문화수준을 제고하는데 직접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민족정풍운동에서 학교의 민족성은 한차례 큰 타격을 당했고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박규찬교장은 투쟁을 받았고 그의 민족성을 주선으로 하는 교육리념은 반동적인것으로 몰렸습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연변대학의 모든 문제와 죄행의 근본뿌리를 민족으로 간주하고 발광적으로 민족대학을 때려부셨다. 연변대학의 지도권을 틀어쥔 로동자선전대는 민족대학으로서의 교수사업의 민족특점, 민족간부배치, 학생수에서의 민족비례 등을 반동적 민족주의로 싸잡아 비판한 동시에 민족대학의 민족성을 철저히 개변시키기 위하여 구체적 개조조치를 취했다.

농촌에 내려보내라는 지시가 하달된 기회를 리용하여 조선족교원들을 대량 농촌으로 보내는 한편 농촌에 내려간 다른 대학의 한족교원들을 데려다가 그 자리를 메웠다. 조선족과 한족학생의 민족비례도 과거의 8:2로부터 3:7로 거꾸로 되였다. 료녕성과 흑룡강성 지역의 조선족학생모집을 취소하고 조선언어문학학부에서도 한족과 기타 민족의 학생을 모집하도록 했다. 교수용어도 한어로 하였고 민족대학의 특색을 체현하는 과목은 반동적인 민족주의, 민족분렬로 규정하고 민족학교를 보통학교로 전변시켰다.

마치 발을 깍아서 신발에 맞추고 머리체통을 줄여서 모자에 맞추는 격이였다. 원래 연변대학의 령혼은 중화민족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조선족의 력사와 전통문화 교육을 골격으로 이루어진것이였다. 그것은 중화민족 령혼의 불가분리의 일부분이며 중화민족령혼의 불가분리의 일부분이였다.

1980년 연변대학 개학식에서 연설하는 박규찬교장

1978년 3월31일, 박규찬은 상급부문으로부터 연변대학 교장으로 임명되여 학교의 행정을 총관하게 되였다.

《4인무리》가 타도된후 박규찬교장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민족대학의 속성과 임무를 하루빨리 회복하는것이였다. 이는 학교 모든 사업의 출발점이였다. 박규찬 교장은 학교당위서기 리희일과 상의하고 각종 경로를 통해 연변주, 길림성, 교육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 문제를 반영하고 지지를 요구하였다.

1979년 11월9일, 박규찬교장이 교육부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 보낸 연변대학의 속성, 임무, 규모 등 규정에 대한 청시보고에는 연변대학은 조선족을 위주로 하고 문, 리, 공 등 관계학과를 가진 종합성민족대학이라고 명확히 천명하였는데 연변대학의 속성임무도 얼마안돼 원상회복되였다. 동북3성과 내몽골자치구가 다시 학생모집범위로 확정되고 조선족과 한족학생의 민족비례도 3:7에서 7:3으로 다시 회복되였다. 이와 함께 민족대학 특색을 반영하는 학과목들도 다시 설치되였다.

《문화대혁명》후 5년도 안되는 교장임기내에 박규찬교장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상처를 아물리고 민족대학의 원형을 되살렸으며 새로운 시기 연변대학의 발전방향과 기본모식을 구축하였을뿐만아니라 튼튼한 학교운영기지를 창조하여 연변대학의 번영과 발전에 튼튼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1982년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부주임이 연변대학시찰시 영접하는 박규찬교장(오른쪽 세번째)

《문화대혁명》 10년동안에 받은 정신적 및 육체적인 박해로 하여 신체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박규찬교장은 암병으로 몸져누웠지만 조선족교육에 대한 연구를 손에서놓지 않았다. 《연변조선족교육사》와 《중국조선족교육사》편찬사업이 끝나는 동시에 박규찬교장은 또 《중국조선족교육사료집》 편찬을 발기하였다. 박규찬교장은 권녕하, 한진옥, 천홍범, 강영덕, 허창선 등 교육자들과 편찬위원회를 결성하고 암투병중에도 20여일 동안이나 동북3성 각지와 내몽골, 북경 등지를 순방했다.

박규찬교장은 림종을 앞두고도 사료집편찬을 꼭 완수하여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후에《중국조선족교육사료집》은 박규찬교장의 유언대로 원만히 편찬을 마쳤고 출판되여 세상빛을 보게 되였다.

1994년 1월28일, 조선민족의 걸출한 교육가이며 연변대학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기여를 평생 아끼지않은 연변대학 제2임 박규찬교장의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박규찬 략력

1918년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 출생

1941년 위만주국 신경법정대학 졸업,룡정동흥중학교 룡정인민학원에서 교편, 일제패망후 룡정련합중학교 교도주임,교장력임.

1949년부터 연변대학 비서처 처장, 교육처 처장, 교무장,부교장력임.

1978년~1982년 연변대학 교장 력임.

1987년 리직휴양.

1994년 1월 28일 별세.

참고문헌:

《연변대학산책》 류연산 저 민족출판사 2009.10

《연변대학교사》연변대학출판사 2004.8

《历史的记忆》연변대학출판사 2004.8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나의 새납도 새 주인 찾아야 할텐데.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이제 누군가는 전통을 외면한다. 전통 자체가 현대인의 정서에 공감을&nbs...
  • 2017-03-23
  • (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 12일 습근평주석이 제12기 전국인대 5차회의 해방군대표단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을 했다.   이 회의에서 9명 대표가 선후로 군사분야에 관한 발언을 했는데 드물게 한 녀성 소장(少将)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로켓군장비연구원 모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조선족 리현옥대표였다.   1964년에...
  • 2017-03-22
  • “춤은 내 운명”, 습근평총서기께 장고춤을 선보인 23세 조선족 청년 지난 2월 24일,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제3채널 “무용세계” 프로에서 소고춤을 추는 한 청년의 무대를 우연히 접했다. 조선족인듯한 모습에 이끌려 자막정보에 따라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을 찾았다. 그리고 취재중에 알게 된 또...
  • 2017-03-22
  • 연변범서방플라스틱유한회사 총경리 조광훈의‘인생사전’ 1986년에 도문시민족비닐공장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30여년 간을 드팀없이 공장장(경리)직을 지키고 있는 연변범서방플라스틱유한회사(미국독자) 조광훈(63) 총경리는 불가능에 도전하며 성공을 이룩한 사나이로 그의 인생사전에는 ‘안된다’...
  • 2017-03-21
  • 제자를 가르치고있는 김성삼선생. 손끝이 선우에서 춤을 춘다. 둥기당당 둥당당… 아름다운 선률은 이내 공간을 가득 메운다. 15일, 국가급무형문화재 가야금전승인 김성삼선생(62세)을 만나 우리의 전통악기 가야금의 흥미로운 세계를 엿볼수 있었다. ■ 우리의 정서를 품은 악기 김성삼선생은 모든 민족악기가 그러...
  • 2017-03-16
  • 길림성조선족기업가협회,길림신문사 공동주최 계렬보도-길림성조선족기업인탐방 (1) 길림성조선족녀성기업가협회 리송미회장 인터뷰 리송미 프로필: 1973년생. 신생활그룹(중국)유한회사 화동지역 총경리 길림성조선족녀성기업가협회 회장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단 상무부회장 길림성조선족기업가협회 상무부회장 연변사...
  • 2017-03-09
  • 동북항일련군 로전사 리민녀사 (흑룡강신문=하얼빈) 박해연 기자= “중국의 항일투쟁사는 8년이 아니라 14년이다. 이번 학기부터 중소학교의 력사교재에 이 부분을 새로 수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다. 수많은 렬사들의 피로 물든 이 6년도 우리 후대들은 알아야 하고 또 잊어서는 안된다.” 동북항일련군...
  • 2017-03-07
  • 자연과의 만남은 늘 경이로워서 때론 바람 한점, 구름 한폭에도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때가 있다. 연변은 특히나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 푸근한 향토풍정을 느끼게 만든다. 박청운화가(54세...
  • 2017-03-02
  • -고 전청송화백의 유언을 두고  지난세기 90년대초의 고 전청송화백 일전 필자는 한국 《연합뉴스》 왕길환기자가 쓴 “24억원 아래로는 팔지 말라…기회가 되면 그림을 팔아 좋은 일에 써달라”는 제목의 고 전청송화백(1946-2013, 연변일보사 미술편집) 유작전시회 관련 기사를 읽었다. ...
  • 2017-02-28
  • 종이에 자신들의 언어와 기억을 저장한 외에도 우리의 조상들은 종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물건들을 만들어 썼다. 종이가운데서도 흔히들 “한지”라고 부르는 조선종이는 질기고 오래 보존할수 있는 장점때문에 명품종이로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이처럼 질 좋은 한지로 만들어낸 일상 도구들은 보기에...
  • 2017-02-25
‹처음  이전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