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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2일 14시11분    조회: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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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조호길


중공중앙당학교 정법교연부 교수
, 법학박사 조호길교수를 쓴다

조호길: 중공중앙당학교 정법교연부 교수, 법학박사, 박사연구생 지도교수.

우리 당의 고급, 중급 지도간부들과 맑스주의리론간부들을 강습시키는 최고의 학부로 불리우는 중공중앙당학교. 그러한 중앙당학교에 가 공부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인생을 바꿀수 있는 한차례 획기적인 기회로 간주된다.

이같이 우리 당과 정부의 최고의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최고의 학부에서 교수로 활약하고있는 조호길 법학박사. 북경대학 정치학부 정치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한국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일본 오사까경제법과대학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 게이오대학 지역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캘리포니아 과학기술대학 객원교수, 중국 조선반도문제연구회 부회장, 중국정치학회 리사 등 그 경력은 쟁쟁하다. 그에 대한 취재는 취재라기보다는 오히려 한차례 멋진 특강을 듣는 기회였고 때로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정치학적인 이야기를 듣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차례의 배움의 자리였다.

평소의 탐욕적인 독서로 풍부한 지식 갖춰
1970년 도문시 월청향의 한 농촌마을에 하향한 조호길씨는 농사일도 배웠는가 하면 로동자모집에 뽑혀 1975년까지 도문시의 한 건축회사에서 벽돌을 쌓는 로동자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공청단도문시위원회로 전근해 공청단간부로, 도문시 한 기업에서는 당총지 서기로, 다시 도문시당위 선전부에 전근해 점차 부부장직까지 오르며 출세가도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그의 인생의 변화에는 운명적인 기회도 작용했었겠지만 그보다도 여러 과정을 걸쳐오면서 축적해온 풍부한 지식이라 할수 있었다. 원래부터 독서에 취미가 깊었던 조호길씨는 하향했을 때든, 로동자로 일할 때든 자기가 접촉할수 있는 모든 책은 그 테마가 문학에 관계되는 책이든 력사에 관계되는 책이든 철학에 관계되는 책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었고 심지어 정 읽을 책이 없으면 고중에 다니던 형들의 교과서마저 빼놓지 않고 읽을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러던중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우리 나라 유명한 맑스주의 철학가, 교육가인 애사기(艾思奇)가 쓴 “변증유물주의와 력사유물주의”라는 철학도서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조호길씨는 비록 책의 내용에 대해 그다지 리해할수는 없었지만 그러한 “무지”는 조호길씨로 하여금 오히려 마음을 철학의 심오함에 깊이 빠져들게 하였다. 그래서 책을 읽고난 뒤면 항상 함께 하향한 친구와 열렬한 독후토론을 벌리기도 하였다는 조호길씨였다.

그 과정에 지식의 한계를 느낀 조호길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다질 마음이 생겼다. 그러는 그한테 대학에 두번 추천받을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아쉽게도 정치심사에서 두번 다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던중 조호길씨는 연변대학 통신학부에는 정치심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 결국 통신학부에 도전해 연변대학 정치학부에서 자기가 항상 꿈꾸던 지식과의 체계적인 접촉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운명적인 기회로 이루어진 북경대학 진입
누군가는 “현명한 사람은 기회를 행운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서구문화의 철학적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공할 희망이 가장 큰 사람은 재간이 출중한 사람들인것이 아니라 매 하나의 기회를 잘 리용하여 열심히 분투하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연변대학 정치학부(통신학부)를 졸업한 조호길씨는 더욱 높은 경지에서의 배움을 갈망한다. 하여 졸업을 마친 뒤 북경대학 연구생 입학신청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밀려나고 말았다. 통신학부 졸업생이라는 학력으로는 불가능하였던것이다. 그러던차 그한테 한차례 기회가 찾아온다. 북경대학 정치학교수였던 사경규(谢庆奎)교수와의 만남이였다.

“1986년 북경대학에서 한패의 졸업생들을 데리고 도문시에 실습하러 왔었는데 당시 선전부 부부장으로 사업을 주관하던 내가 그들을 접대하게 되였고 인솔자인 사경규교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가운데는 조호길씨가 “변증유물주의와 력사유물주의” 등 철학공부를 하면서 리해못했던 부분들도 있었고 농촌호도거리에 대한 농민들의 몰리해와 우려 등과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그때는 중국은 한창 개혁개방이라는 거대한 격변기를 겪고있을 때였다. 농촌호도거리가 금방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리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머리속에는 항상 무엇때문에? 무엇을 개혁하는가? 어떻게 개혁하는가? 개혁해서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 하는 물음이 자리잡았다.” 그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부지런히 출판물들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한편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며 농민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정황을 료해한 뒤 자료를 작성해 상부에 반영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결국 그러한 경력은 한 지방의 당선전간부를 북경대학에 가 공부하도록 떠미는 추진제역할을 하게 된다.

서로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아마도 광범위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쌓은 조호길교수의 경력과 지식수준이 사경규교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사교수는 조호길씨가 “책을 많이 읽은것 같다”며 북경대학 연구생시험을 보라고 권장한다.

결국 그는 공직을 내놓고 북경대학 연구생을 지원하게 된다. 연구생시험을 보려면 외국어시험은 필수다. 외국어와는 거의 접해본적 없는 조호길교수였지만 무엇도 그의 끈기를 꺾지 못했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한테서 기본자모정도를 일주일간 배운 뒤 완전한 독학에 들어간 그는 사전, 자전을 찾고 베끼고 하면서 결국 일본어시험에 합격하였는가 하면 면접에서 난데없는 고문(古文)이 등장했을 때도 이왕 고대한어를 독학했던 기억을 살려 합격되였다. 하여 조호길씨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북경대학 정치학부 연구생공부를 하게 된다.

북경대학 정치학부에서 석사공부를 하면서 조호길씨는 지방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또 국내 최고의 대학교에서 발산하는 매력과 다양한 배움의 진풍경에 반하게 된다.
“당시 교실마다 각종 강좌거나 특강이 열렸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는 조호길씨, 하지만 금방 학교에 입학해서 들은 첫 강의는 조호길씨를 무한한 당혹감에 빠지게 했다. 영어로 된 강의였던것이다.

“사실 그때 눈앞이 캄캄해났다”며 그때를 상기하는 조호길교수. 다른 학생들은 국내외 유명한 정치학가들의 다양한 리론지식을 접수한 상태이고 조호길씨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웠으니 영어 강의를 알아들을리 만무했던것이다. 그래서 또 한차례의 혹독한 배움이 시작된다. 중국의 고대정치제도사와 정치사상사, 세계정치사 정치학리론 등 분야의 명작들을 일년에 50여권 정도 독파할 정도로 혹독한 독서와의 전쟁을 치르고나니 결국 부족했던 지식구조를 얼마간 보완할수 있었고 자신감도 되찾을수 있었다.

그동안 북경대학 정치학부 연구생회 주석도 해보았고 심지어 학교연구생회 부주석까지 경험했던 조호길씨, 그는 그러한 리더십과 풍부한 지식을 인정받아 북경대학에 남을 기회가 있었는데 농민, 로동자, 공청단간부, 선전부문 간부 등 다양한 경력까지 보태지면서 결국 1991년 중앙당학교에 진입하게 된다.

“조선족이라고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라!”

북경대학 정치학부 연구생회 주석직을 맡았었고 심지어 전국대학생총련합회 주석자격을 따낼수 있는 북경대학연구생회 주석직을 거의 코앞에 남겨둔 상태에서 조선족이라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으로 그 자리를 다른 사람한테 양보했었는데 그때문에 자기를 추천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도 없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자신의 경력과 경험에서 조호길교수는 조선족이라고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조호길교수는 “조선족은 우수한 민족이다”고 강조한다. “옛날 조선족은 중국의 건설과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힘들게 이 땅을 개척하였고 그러한 땅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우리 민족은 가치관의 혼동이 타민족에 비해 많은데 따지고보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리유는 우리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기때문이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을 개척하고 피를 흘린만큼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 언어문자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그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는 표현력이 상당히 중요한데 조선어는 가장 우수한 문자중의 하나로서 미세한 느낌까지 다 표현할수 있다. 또 말로 되는것이면 거의 글로 쓸수 있는게 조선어이다”고 하면서 “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안타까와한다. 그래서 특히 젊은이들을 보고 조선족이라는데 자긍심과 함께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의 자녀는 세살 때 북경으로 왔는데 조선말을 잊지 않고있다고 한다. 조호길교수가 우리 말의 우수성을 두고 보인 행동의 결과였던것이다.

조선족들의 출국과 도시진출 등 사회현상을 두고 조호길교수는 “이는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에로 이행하는 과정이고 구조주의가 해체되는 과정”이라며 도리를 따질줄 알고 일시적인 리익을 따르지 않는 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은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갈것이라고 말한다.

충고도 남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잘될수 있는것은 아니다. 주류사회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이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훌륭한 사람들도 많지만 변두리에서 돌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조선족의 일만이 아니며 다른 민족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있다”며 중요한것은 스스로에 대한 파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스스로를 존중할 때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한다. 반대로 내가 남을 존중할줄 모르면 나도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을수 없다”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느라면 타인의 존중을 받을수 있고 자신을 도와줄수 있는 귀인, 다시말하면 기회가 생긴다는것이다.

지금까지 조호길교수는 《비교정치학—개발도상국적 시각》(중문), 《현대화와 권위주의: 한국현대정치발전에 관한 연구》, 《한국현대정치론》(중문) 등 여러권의 도서를 독자 출간하고 《중국개혁전서—정치개혁권》, 《정치학신편》, 《당대 중국정부》 등 도서를 공동 출간했다. 중앙당학교에서 뿐만아니라 국내 여러 대학들에서 한 강의, 국내외 학술회의에서 한 보고는 항상 커다란 반향을 불러온다. 그는 또 교육부의 중점공략프로젝트로 “정치가치의 새로운 구축과 중국정치발전”이라는 프로젝트를 4년째 맡고있는데 올해 7월에 마무리한다. 현재 그는 중앙당학교 연구생원에서 정치학리론, 정치학연구방법론, 비교정치학을 가르치고있으며 간부반에서는 중국정치체제개혁, 동북아시아발전전략비교, 경제현대화와 정치민주화, 정치체제개혁 등 리론을 강의하고있는데 학생들은 다수가 시장으로부터 성부급 간부들이다.

취재가 끝날무렵 조호길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자 인(人)은 서로 의지하는게 인간이라는 의미로 리해할수 있고 어질 인(仁)은 인간관계조화의 최고 경지라 할수 있다. 가족간, 형제간, 서로간…의 조화인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민족과 우리 사회의 더욱 성숙된 조화를 꿈꾸어보았다.

연변일보 전윤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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