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민족문화교육의 전초지이자 최후의 보루; “소년보 공익사업으로 무료배포해야”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7일 15시59분    조회:47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학천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38)
 
중국조선족소년보 사장 겸 주필 김학천 인터뷰

 
 


삽화, 만화 비례 증가 시각적 효과 강조

신문 외 활동 신문위상 크게 높혀

신문지면 12개로 축소, 학생부담 줄여

 

사진 박군걸 글 육삼

 
김학천시인이 중국조선족소년보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지도 수년이 흘렀다. 소년보도 력사의 호황기에서 빗나가 지금은 시장경제란 대세속에서, 그리고 조선족인구 마이너스성장이라는 특유의 사태에 밀려서 곤혹의 시기를 접하고있다.

일전 김학천사장을 만나 인터뷰시간을 가졌다.

“소년보는 올해로 62년 력사를 기록하고있습니다. 1984년 8월 당시 공청단 중앙 호금도서기께서 사업차 연변에 오셔서 사업보고를 청취하고 당시 연변소년보를 ‘중국조선족소년보’로 개명할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우리 신문은 전중국을 상대로 하는 소년아동신문으로 격상되였습니다.”

현재 50대이상 분들은 소년보를 읽으면서 자랐다.당시 과외독서물이 극히 제한되였으며 경제의식이 덜 강조되는 시대 문화적 열정이 절대적 우위를 찾지하고있었다. 소년보에 기사나 작문이 발표되면 무상의 영광으로 간주했고 그처럼 신문은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접어들면서 모든 조선족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소년보도 시장이란 차디찬 시험대에 오르게 되였고 잇따른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였다.

“저희 소년보는 몇년전만 하여도  수만부에 달하는 발행부수를 확보했으며 가장 많을 때는 7만여부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년보의 발행부수는 9000부, 만부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적자경영을 하고있습니다. 조선족학생수 감소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시장경제의 경쟁속에서 소년보는 사실상 불평등위치에 있다는것입니다.”

개혁개방이 실시되면서 시골 연변의 신문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시장에 진출해야 했으나 소년보는 지체의 속성상 광고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전반 소년인구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조선족 소학생이 독자군이며 조선족인구마이너스 장성의 가장 직접직인 피해자로 소년보는 구독인구층의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는것이 김학천 사장의 설명이다.

“이런 제한적인 독자층을 상대로 꾸리는 소년보는 주문에서도 허다한 제한을 받고있다. 연길시 등 교육계통에서는 “무신고”활동을 벌리고있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소년보 신문주문이 힘을 잃고있다. 소년보가 우리민족 문화교육의 전초지이자 최후 보루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현실은 랭담했다.

“신문을 잘 꾸리기 위하여 편집기자들은 최선을 다하고있습니다.  지면개혁도 했고 어린이 상대로 시각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삽화나 만화의 분량을 늘였습니다. 어린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지면을 24개에서 현재의 12개로 줄였습니다. 신문 외의 다양한 활동을 정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진행해왔습니다. ”

소년보에서는 “백두아동문학상”, “사랑의 일기”, “삼소경연” 등을 10여년간 이어왔으며 “태왕컵장학금”, “김수신장학금” 등도 적극 유치, 진행하였다. 중국조선족소년보의 위상도 날로 높아지고 영향력도 커가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발행부수의 줄어듬은 시장경제하에서는 필연적 현상으로 남아있다. 이에 대한 령단묘약을 김학천사장은 이렇게 제시했다.

“우리는 소학교교육을 의무화하고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조선족소년보는 조선족소학생들이 접할수 있는 유일한 신문입니다. 소년보를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위치를 선정하고 전국 조선족소학생들에게 무료공급하여야 합니다.”

조선족소년보를 리윤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에 떠넘기는것은 민족에게, 그리고 미래에 극히 책임을 지지않는 태도이며 부적절한 행위로 볼수 있는 요소가 다분한것이다.

“조선족인구가 날로 줄어들고 조선족학생의 한족학교 전학 또는 입학이 심각해지면서 조선족소학생수는 해마다 줄어들고있습니다. 거기에 저급학년 학생은 신문열독이 불
가능하기에 신문구독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렇게 보면 조선족소년보 무료공급대상자는 3만명 가량 됩니다. ”

중국조선족소년보를 공익사업으로 간주하고 국가재정예산으로 처리하여도 큰부담은 되지 않는것으로 기자는 본다. 1년 구독료가 62.40원이고 또 동북3성 공청단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신문이기때문이다.

미래주인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리익을 챙기는 일이 아닐까?!
 




김학천 략력        
 
중국 돈화시 출생
연변대학 중문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주석 력임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 겸 주필
한문시집《  的季 》,조선문시집 《꿈 많은 봇나무숲》 등 여러 권 출간
제7기 전국소수민족문학상(한문시집) 등 수상.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학교 도서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는 조금숙선생님   《과학자가 되든 로동자가 되든 무슨 일을 하든지 착하고 열심히 하면 모든 곤난을 이겨낼수 있고 훤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는 심양시 소가툰구조선족중심소학교 4학년 3반 조금숙선생님의 교육리념이다. 그는《우리 학생세대들은 앞으로 리산가족이 ...
  • 2013-07-09
  •    할빈 국제무역복장성 패션 디자이너 영란씨   (흑룡강신문=하얼빈)김은희 기자=꿈은 환경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킬수 있는 원동력이다.   꿈은 또 한 사람의 성격, 직업, 운명까지도 개변시킬수 있다. 그가 소시적에 꿔온 '소박한 꿈'이 그를 오늘날의 할빈복장계를 주름잡는 '패션 디자이너'로...
  • 2013-07-09
  •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채택룡. 지난 2004년 6월 1일 연길공원에서 《채택룡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 제막식에서 중국조선족아동문학평론가 김만석선생은 《채택룡은 우리 아동문학에서 동요, 동시, 동화, 아동소설을 제일 처음 개척한 에누리없는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의 창시자이며 자격이 당당한 중국조선족아...
  • 2013-07-08
  • 항일투사 조선족문학의 대부 불굴의 공산당원 태항산에 세워진 김학철항일문학비(2005년 8월, 뒤에 보이는 비석은 2012년 6월에 호가장보위전항일렬사기념비임) 김학철(1916-2001)은 조선민족의 해방사업과 중국혁명을 위해 영용하게 싸운 항일투사이고 중국조선족문학의 대산맥을 이룬 대표적인 작가이며 불의에 과감히 도...
  • 2013-07-08
  • 한국의 낚시술로 중국고기를 낚으며 돈농사와 자식농사를 함께 잘했다 고맙게도 정녕 내가 찾던 한국을 나들이 하는 조선족의 모델을 만난 것은 지난 6월 26일이다. 백운산(白雲山), 59세, 그는 하향지식청년(고졸생), 연변화룡탄광로동자, 해방군공정병(4년), 도문시운수공사, 도문시당위판공실, 도문시과학위원회 등 공, ...
  • 2013-07-04
  • 김병민교수. 지난 5월 14일, 신록을 재촉하는 잔잔한 이슬비가 아침부터 보슬거리고 있었다. 연변대학 낡은 캠퍼스에서 신축캠퍼스로 이어지는 길가에 함초롬히 젖은 연분홍 복사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다가갔더니 발치에 노란 개나리가 웃고 있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어른과 아이, 스승과 ...
  • 2013-07-04
  • 라치환선생 라치환선생은 중국조선족으로, 동양인으로 넘을수 없는 벽으로 느껴지던 속도스케이트 철막을 헤치고 새중국 창건이후 첫 세계우승을 따낸 스포츠 명장이다. 1941년 흑룡강성 해륜시 조가툰에서 태여난 라치환선생은 1956년 수화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속도스케이트에서의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서...
  • 2013-07-03
  • 흑룡강성 전임 정협부주석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민녀사의 이야기     2008년 6월, 항일련군 복장차림으로 항일련군 유적지를 찾은 리민녀사(자료사진). 리민 프로필 1924년 11월 5일 흑룡강성 탕원현 오동하촌에서 출생, 조선족 흑룡강성 전임 정협부주석,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해방전쟁시기인 1948년 8월 1일...
  • 2013-07-03
  • -57년간 민간문예 수집정리의 외길인생 걸어온 리룡득선생 1961년 8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였던 주덕해는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민간문예자료를 수집할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문화를 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한데서 이보다 더 절박한 표현이 또 있을가?! 개혁개방이후 홍수처럼 밀려...
  • 2013-07-03
  • ㅡ서풍현 강관화현장 인상기 프로필: 1963년 길림성 반석현 출생 1988년 심양사범대학 생물학부 졸업 1988년부터 철령시대외무역경제합작국 과원, 부과장, 과장, 부국장, 국장 2004년부터 철령시과학기술국 국장 2011년부터 철령시 청하구 구장 2012년 10월 현재 서풍현 현장, 성인대 대표.   지난세기 50€?0년대에는...
  • 2013-07-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