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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락 판소리에 일생을 바쳐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3일 10시23분    조회: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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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강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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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락 판소리에 일생을 바쳐
—판소리 전승인 연변대학 강신자교수를 만나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고희가 지나도 제자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고있는 강신자교수는 "국가급판소리전승인"이다.

1958년, 강신자교수는 연변예술학교 성악학과 입학시험에서 민요 “아리랑”을 불러 1차 심사에 합격되였고 재심사에서 시험관이 시키는대로 한곡조를 따라 부른것이 판소리라고 한다. 예술학교에 입학한 강신자교수는 연변예술학교에서 판소리학과를 설치하면서 목단강으로부터 초빙해온 판소리전수자 박정렬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에 접해보지도 못했던 판소리는 재미기 없었고 어렵기만 했다. 입학할 때는 같이 공부하던 학생이 몇명이 있었지만 졸업할 때는 강신자만이 유일하게 판소리를 전공하고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중도에 전공을 바꾸어버렸다.

1961년,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한 강신자는 모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다. 그뒤 강신자씨는 선후로 길림성민족가무단, 연길시문공단,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서 민족성악교수로 활약해왔다.

판소리는 300여년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구연예술로  2011년에 국가문화부에 의해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였다.

1930년도 일제침략시기, 리동백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판소리전문가가 몇몇 사람을 거느리고 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했는데 그때 중국에서 판소리가 처음으로 공연되였다.

1950년대초, 여러 민족의 전통문화예술을 조사, 수집하라는 나라의 지시에 따라 정진옥, 리황혼 등 선생들이 연변의 판소리를 발굴, 기록했었다. 그러나 연변의 조선족은 대부분 북도에서 이주해왔으므로 남도민요인 판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이에 흥취가 없다보니 연변에서의 판소리의 보급은 난항을 겪어왔다.

1987년, 연변예술학교에서 남도민요학과를 설치하면서 강신자교수는 연길시조선족예술단으로부터 연변예술학교로 전근해왔다. 1990년에 강신자교수는 9명의 제자와 함께 연변음악가협회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40분 동안 음악회를 가졌다. 공연을 보고난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탁성으로 노래를 부르기에 성대에 손상을 줄것이라면서 판소리창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판소리의 존속문제도 말밥에 오르게 되였다. 크게 타격을 받은 강신자교수는 집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판소리발성체계를 개혁할것을 결심했다.

강신자교수는 몇년간의 시간을 들여 중앙음악학원 엽패영선생으로부터 전수받았던 발성법에 기초하여 고음부에서도 진성으로 발성할수 있는 새로운 발성체계를 연구해냈다. 이 발성법은 강신자교수의 수제자 변영화가 2006년에 있은 CCTV 전국청년가수 콩클에서 통속창법 은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강신자교수는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냈는데 이들 제자들은  강신자교수의 발성법을 리용해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내면서 국내외의 무대에서 활약하고있다.

 일생을 판소리와 함께 하고 판소리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아끼지 않은 강신자교수는 "요즘 민족성악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조교로 있는 박소연이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에 애착을 가지고  판소리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니 다행스럽고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연변일보 허국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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