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황제는 왜 그런 음악 들었을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22일 13시53분    조회:622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익선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4) 장익선 

연변대학예술학원 장익선 음악학박사를 찾아서
 

 
 

음악 혹은 노래라함은 우리가 그림자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지내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이 없다. 특히 한많고 설음많은 우리민족에게 노래는 정서의 표현이요 심미의 발상이며 삶의 기록이라 하겠다. 머나먼 력사는 제쳐놓고도 오늘날 우리는 회사 또는 취중 뒤풀이로 늘 노래방을 찾게 된다.
 
노래는 별다른 전업적 훈련을 받지 않고도 엄청나게 잘 부르는 고수들이 많다. 기능적 면에서 출중하기에 “쟁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쟁이”는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한계”에 부딪치게 되며 체력적, 의식적 제한으로 하여 발전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황제는 왜 그런 음악 들었을까?”
 
기자에게 재미있는 물음을 던진것이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서민음악과는 달리 궁중에는 궁중음악이라는것이 생겨났고 황제는 그런 궁중음악을 즐겨들었다. 서민음악은 왜 듣지 않았을까?
 
느리고 천천히 배회하는, 점잖게 무게를 싣는 그런 궁중음악만을 즐겼을까?
 
“알아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모른다하여 부정하지 말고 배척은 더욱 말며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알아가지고 내것으로 가공하여 흡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인들은 사색하고 심사숙고하고 무아지경에 빠져들어가는 문인음악에 도취
했었다.
 
“먹고 놀고 즐기는 노래는 음악의 표층이요, 음악의 심층에는 사상과 화합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마디 해석 밑바탕에는 그가 바친 인생 한부분이 고스란히 스며있었다.
 
불혹지년을 넘긴 그가 한국류학 길에 들어선것은 특별한 리유가 있은것도 아니다. 단지 남들이 박사하고 돌아온 것이 자극제가 되어 “승벽심”에 이 험난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이미 대학교 부교수직함을 가지고있었다.  2002년의 일이었다.
 
인민폐 10만원을 지니고 학문의 돌다리를 두드렸다.  한양대학에 입학하여 학비를 내고 류학생 보증금 지불하고, 숙소를 마련하고, 그는 하루밤 사이에“거지” 가 되였다.   한명 없는, 원군이 없이 고립된 “무인도”에 갇힌 것이다. 전부재산이 고작 한화 10만원, 입학파티를 연다고해서 또 한화 1만원을 내야했다. 그것도 외국인류학생이라 배려하여 참석비가 1만 5000원인데 1만원만 받은 것이다.
 
고생을 사서 한 셈이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김밥을 먹어야 했고 2시간 넘게 지하철에서 끄떡이다가 점심에는 물이나 차물로 대충 요기하고 저녁에는 라면으로 속을 덥히였다.
 
나이를 턱대고 염체불문하고 지도교수에게 연구실을 빌려쓰겠다고 해서 다행히 책읽을 장소가 생겼고 점심에 차물의 혜택도 향수할 수 있었다.고난의 행군을 이어갔다. 수업받고 페이퍼 쓰고 리포트 제충하고 또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고, 악보그리기를 컴퓨터에서 새롭게 배워야 했고 학부보충을 받아야 했고 지도교수 따라 세미나에 참석하고, 정말로 팽이처럼 돌아쳤다. 긴긴 터널은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무료로 출연하여 악기를 연주했다. 단소가 그의 특기였다. 이어 출연비를 받게 되고 대학교 특강에 출강하게 되었다. 박사공부 만 3년 동기생4명 중 장익선은 유일하게 음악학박위를 수여받았다. 졸업론문은 ≪연변민요의 음악적 특성과 전승양상에 대한 연구≫였다.
 
“공자는 예악(  )를 늘 말했습니다. 음악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렇듯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음악을 통하여 화합이 추진되고 감정을 교류하고 집단의지를 굳히고 의식을 통일하는 것이다. 술마시다 싸움질 하는 광경을 보았어도 노래부르다가 때리고 까부시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한 지역의 개척사를 보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탐험가이고 그 뒤를 이
어 종교인이 오고 또 뒤에는 상인이 오고, 정치인이 오고 음악, 문화인들이 찾아온다.
 
이러한 종교인은 나중에는 지역음악을 흡수하게 되고 그것을 종교음악과 결부하여 새로운 경전음악을 만들어 갔다. 지역과 민족과 고유문화가 융합되는 과정이며 이 또한 당지에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과정이며 넓혀지는 과정이다.
 
졸업후 귀국하여 모교에서 후대양성에 힘쓰면서 장익선 박사는 조선족지역을 답사하면서 민요수집에 참여, 민요의 수집과 정리, 발굴에 힘썼다. 2008년에는 “진달래”컵 중국조선족전통음악무용경연대회를 개최, 작년까지 4회를 거쳐, 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옛날 악기는 사람따라 이동했을거고, 다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이런 민족악기에 대한 발굴과 재현 역시 장익선박사가 연구하는 하나 분야이다. 현재 동아음악고고학회 비서장으로 사업하고 있는 그의 소개에 따르면 금년도 행사는 중국 소주에서 거행, 소주공업단지에서 50만원, 중국음악학원에서 100만원을 출자한 “우리 음악에는 서민음악이 많다. 하나만을 알고 다른 것을 모르면 정서가 단순해진다.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말이다. 우리 또한 “쟁이”가 되지 말고학문을 닦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 음악이 왜서 탄생했고 어떻게 생겨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연변의식은 너무 좁다. 음악에서 방법론, 사유정체성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음악학문에 다소 먼저 입문한 선배로서 자신의 할 일은 교량작용이라 한다. 옳은 말씀인 것이다.

         글 육삼    사진 박군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농악무》와 나의 아버지 하태일 50년대 흥겨운 농악무의 한장면, 앞줄 꽹과리를 손에 들고 앉은 자세로 춤추는 사람이 하태일선생 《연변농악무》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예술형태로 공연에서 마지막 종목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중들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력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우...
  • 2012-08-05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했어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앞으론 눈치 덜 보고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내 최대의 조선족 동포단체 재한동포총연합회가 재한다문화총연합회로...
  • 2012-07-27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http://hljxinwen.dbw.cn   2012-07-25 10:16:43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임용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김세영 견습기자 =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조선족,28세)씨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부 광학전공 박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 2012-07-25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