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새중국의 제1세대 조선족비행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2월30일 10시38분    조회:65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유병주
[길림신문 2011-12-30 홍옥 기자]료심전역 평진전역 중남전역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로전사의 이야기

장춘에 새 중국의 제1세대 비행사로 폭격기 기장, 대대장으로 있었던 조선족 유병주로인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기자는 12월 22일 장춘시 록원구에 있는 청년로 로간부휴양소를 찾아갔다.

미리 취재련락을 해온 상황이나 유병주로인은 기자를 만나자 《정치심사》를 했다. 기자증을 보자는것이였다. 비행사였고 또 《문화대혁명》시기에 3년 8개월동안 《학습반》에 들어가 《반성》을 한 경력이 있었기때문에 조심하고있다는것이였다.

올해 83세 나는 로인은 나이와는 달리 신체가 좋아 보였다. 말소리가 똑똑하고 사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는 별로 해놓은 일이 없다며 자기보다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소개하겠으니 그분을 취재하라며 취재를 거절했다. 기자가 중국의 제1세대 조선족비행사란 점에 흥미를 가진다고 하자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비행사라면 신체조건을 빼놓고 엄한 정치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조선족으로서 어떻게 뽑혔는지 알고싶다는 물음에 유병주로인은 신체도 좋고 무엇이나 잘해서였다며 말머리를 뗐다.

폭격기비행사로 첫 전투서 승리

1928년 3월 6일 길림성 훈춘현 경신에서 태여난 유병주는 1946년 2월에 조선의용군 제5지대 교도대에 입대하고 1947년 4월에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를 졸업한후 동북민주련군 길동독립제1사공급부(후에 제4야전군141사공급부로 개편)에서 복무하였다. 해방전쟁시기에 료심전역, 평진전역, 중남전역 등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다.

1949년 9월 중국인민해방군에서 제1세대 비행사를 양성한다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전국 륙군 패장이상 간부들가운데서 비행사를 뽑았다. 네번의 신체검사에서 최상위를 차지했고 지나온 성적이 뛰여난지라 유병주는 정치심사에도 통과되여 순조롭게 할빈 제1항공학교에서 항공리론과 기술을 배우게 되였다.

유병주는 《당시 항공교원이란 구쏘련 교원들이고 비행기도 구쏘련비행기였다》며 《 제1세대 비행사가운데 조선족비행사가 8명이나 있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항공기술을 열심히 익힌 보람으로 유병주는 침착한 심리자질과 숙련된 비행기술을 장악하게 되여 학교에서는 그에게 3등공을 기입해주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폭발되고《38》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중국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맥아더가 지휘하는 《련합군》은 《38》선을 넘어 계속 북상하였다. 이런 위기상황에 모택동주석은《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들고 전국 군민들이 이 운동에 뛰여들것을 호소하였다.

1950년 11월 상순 유병주는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할 준비를 하라는 상급의 명령을 받고 비행훈련을 다그쳤다. 1951년 11월 29일 밤 11시, 유병주소속 대대에서는 미군에게 점령당한 조선의 서해안 대화도를 야간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0대 비행기가 항행등을 켜지 않고 동시에 밤하늘을 꿰뚫고 대화도를 향했다. 예정된 위치에 다달으자 앞에서 비행하던 비행기가 조명탄을 투입하고 폭격기비행사인 유병주는 그 뒤를 이어 한매 또 한매의 폭탄을 적군목표에 정확하게 던졌다. 첫 전투에서 원만하게 임무를 수행한 유병주와 그의 전우들은 상급의 표창을 받았고 유병주는 3등공에 기입되고 기장, 대대장으로 임명됐다.

 

폭격기 기장 겸 대대장으로 있을 때의 유병주(왼쪽 첫번째)와 그의 전우들

목숨을 잃을번한 두차례의 비행시험

유병주는《1952년 항미원조전쟁에서 돌아온 나는 비행시험원으로 배치받고 많은 비행시험을 했지, 그때 20대 초반이였는데 위험천만한 일을 두번이나 겪었소》라고 하며 위험의 고비를 넘긴 두차례의 비행사고를 얘기했다.

한번은 비행기가 리륙해서 얼마 안돼 속도, 고도, 비행방향 등 주요 표시의기가 돌연 전부 고장이 생겨 유병주앞에는 의거로 될만한 아무런 수자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와 함께 땅에 굴러떨어질 아찔아찔한 위기일발의 시각에 유병주는 침착하고 숙련된 비행기술과 경험으로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또 어느 한번은 비행시험을 마치고 착륙하는데 비행기뒤바퀴가 고장이 나서 비행기가 고속으로 활주로를 벗어나 곧장 옆에 있는 공장건물로 향했다. 유병주는 위험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격렬한 요동속에서 태연하게 작동하여 비행기를 건물앞에 뚝 세웠는데 공장건물와의 거리가  17메터도 채 안되였다. 한차례의 큰 악성사고를 피면하게 된것이다.

공군병원에서 만난 인연

할머니를 보니 할머니도 군대출신 같다고 하자 옆에서 줄곧 우리 얘기를 듣고있던 유병주의 안해 오민지는 인제야 차례가 왔다싶어 유병주로인과의 련애사를 얘기했다.

올해 76세 나는 유병주의 안해 오민지는 목단강시 사람으로서 15살도 되기전에 입대하고 공군제1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있었다. 후에 북경의학원을 졸업하고 공군부대 군의로 있다가 1980년에 민항병원에서 근무했다. 오민지는 1952년 말에 공군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있을 때 맹장수술을 하러 온 유병주를 만났다. 같은 민족이라 간호하고 간호받고 하는 사이에 둘은 서로 호감이 생겨 1956년에 결혼했다.

그 사이 1954년부터 1958년 유병주는 구쏘련공군학원에서 류학하게 되였는데 이 학원은 전문 공군 중급지휘관과 참모를 양성하는 학원이였다. 공부하는 시기 유병주는 구쏘련방문을 온 모택동주석의 접견도 받았다.

오민지할머니는 《나는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면서 평생 령감따라 다녔소》하면서 《남편이 류학을 마치고 온후로 중국인민해방군 공군학원에서 교편을 잡게 되자 우리는 북경에서 생활하다가 1971년 4월에 남편이 신강민항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자 나는 또 그를 따라 신강에 가고 1981년 9월에 부참모장으로 중국인민해방군 장춘공군비행학원에 오게 되자 장춘에 오게 되였소》, 《령감이 3년 8개월동안 <학습반>에서 <반성>할때는 혼자서 애 셋을 키웠소, 그때 제일 큰 애가 12살이고 작은 애가 5달밖에 안되였소. 몸이 고달픈것은 둘째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소》라고 털어놓았다.

《1983년에 리직휴양하고 지금은 로친과 함께 태극권을 하고 게이트뽈도 치고 신문도 보고 참으로 재미있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있소》. 이렇게 말하는 유병주로인의 모습이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안해 오민지와 훈장을 정리하고있는 유병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료녕SK실업부동산개발유한회사 리사장 홍종국씨 “그룹에서 조선족인 저를 이렇게 인정해주고 밀어줄줄 몰랐습니다. 그 기대에 보답하고저 열심히 일하고있습니다.” 패기와 자신감에 벅차있는 홍종국씨(1963년생), 현재 그는 료녕 SK실업부동산유한회사 리사장, 단동SK물류유한회사 총경리를 맡고 단동지역의...
  • 2013-11-19
  • 문주호씨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 록강사회구역에 거주하고있는 문주호(45세)씨의 나무뿌리조각이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있다. 나무뿌리조각공예에 남다른 애착심을 갖고있었던 문주호씨는 20년전인 1992년부터 안해 안춘옥(45세)씨와 함께 부지런히 산과 골짜기를 넘나들며 모양이 각이한 여러가지 마른 나무뿌리를 주어...
  • 2013-11-19
  •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 창업스토리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는 20년 동안 순간온수기개발에 몰두하여 창업의 희열을 맛보고있는 창업인이다. 1982년 동북공학원(지금 동북대학) 주물전업을 졸업한 박무일씨는 주물에 남다른 흥취가 있었고 매사마다 끈기있게 달라붙었...
  • 2013-11-19
  • ‘예술구국(藝術救國)’. 이 짧은 문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성환 선생이 독립운동 동지였던 한흥교의 아들인 항일음악가 한형석에게 ‘예술을 통해 나라를 구하라’며 내려준 훈구다. 먼구름 한형석은 한일강제병합이 강행됐던 1910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불운한 해에 태어난 ...
  • 2013-11-18
  •       전통산업의 재발굴과 문화식품 시대를 선도하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리동춘 사장 “21세기는 문화식품시대이다”라고 고취하는 사람이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의 리동춘 사장이다. 그는 우리민족의 전통식품인 된장과 전통술의 재발견을 통해 ‘오덕 장로주&rsqu...
  • 2013-11-15
  • [화제집중] 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편집국장)과 펼친 담론 장경률 선생은 지난 11월 3일 동포세계신문사를 방문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쟁론이 벌여졌다. 이 쟁론에 화두를 던진 장경률 길림성 조선문신문잡지 심열위원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 2013-11-13
  • “나시족은 운룡설산을 자신들의 정신적지주로 생각한답니다. 하늘이 손에 잡힐듯 하지만 하늘대신 산을 품은 나시족의 정신은 만년설만큼 고결해 보였습니다” 길림성 지질국 연변지질 제6조사원에서 니화석 지질학자로 근무했던 김한산(73살)선생이 건네는 첫마디였다. 그는 째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2013-11-13
  •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총경리의 창업담   관전정기수산물양식장,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1966년 생)총경리가 동항시바다가에서 민물고기 양식과 수출로 흥부박을 캐고있다. 연길태생인 그는 지난 1983년에 연변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연길시방직공장에 배치받아 10년간 사업을 해오다가 1993년...
  • 2013-11-12
  •  조선족 미술계 원로 김영호 옹    11월 5일 오후 2시, 기자가 중국 조선족 미술계의 원로이자 거목인 김영호화백(83세)의 저택을 찾았을 때 선생은 한창 래년에 연변대학 미술학원 미술전시홀에서 마련될 수채화 중심의 개인전시회(약 40여폭)에 출품할 작품을 창작중이였다. “오전에는 약 3시간 동...
  • 2013-11-08
  •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새회장에 뽑힌 이건기 싱가포르 한나프레스 사장. "갈라진 한인 언론인 단체 통합에 앞장서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현재 전 세계 한인 언론인들의 단체가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세계한언)와 재외동포언론인연합회(재언협)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2013-1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