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대치한 영국군 소위
당시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복원·공개돼
“양쪽 병사들 악수하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100년 전 오늘, 유럽 서부전선에 있던 영국군 병사가 꽁꽁 언 손으로 고향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 사진 영국 체신공사
100년 전 오늘, 유럽 서부전선에 있던 영국군 병사가 꽁꽁 언 손으로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사진)를 썼다. “어머니, 난 지금 참호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진짜 크리스마스 날씨지만, 모닥불을 피우고 지푸라기가 넉넉해 꽤 아늑해요.” 병사는 그날 경험한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가며 “오늘 세상에서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특별한 광경을 본 것 같다”고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25일 오전 10시께 팔을 흔들며 참호를 나온 독일군 병사 두 명이 영국군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총을 쏘려는 순간 그들이 총을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중 한 명이 나가서 그들과 만났다”고 썼다. 2분 정도 지났을까. 두 줄로 나란히 파여있던 참호 사이 지대는 양쪽 병사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악수를 하며 서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어요.” 그는 병사들이 각자 참호로 돌아가도록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30여분간 이 만남이 계속됐다고 적었다. 또 그날에는 총알 한 발 오가지 않아, 병사들이 자유롭게 참호 벽 위로 걸어다녔다고 묘사했다. 중간지대에 널부러져 있던 주검들을 함께 묻고 공동 장례의식도 치렀다. 그는 자신도 독일군과 악수를 나눴다며, 담배를 나눠 피고 기념사진을 찍은 병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휴전이 이어질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독일군이 (함께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1월1일에도 또 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피어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생생히 전한 편지의 주인공은 당시 영국 보병부대 ‘세컨드 고든 하일랜더스’ 소속 앨프리드 두건 차터 소위였다. 그는 이후 대위로 진급했으나 1915년 누브샤펠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1974년 사망한 차터의 편지를 영국 체신공사 로열메일이 1차 세계대전 기념우표 세트를 내며 복원·공개했다고 <가디언>이 24일 전했다.
1914년 12월25일 서부전선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유명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90m 거리를 두고 참혹한 ‘참호전’을 벌였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성탄절에 함께 캐럴을 부르며 서로의 머리를 깎아줬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이 축구시합을 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근 양국 군 축구 대표팀은 기념 시합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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