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와 길림신문] 내 청춘과 성장의 시간들을 함께 한《길림신문》
조글로미디어(ZOGLO) 2025년4월11일 15시25분    조회:108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성송권

내가 처음 《길림신문》과 접촉했을때는 1985년, 그러니까 초창기때 부터였다. 

1977년 나는 당시 훈춘현 량수공사 남대중학교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서 농사일에 종사했다. 그때 세월에는 다 그러했듯이 농촌문화생활이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 영화 한편을 보려 해도 15리나 되는 향소재지에 걸어 가야 했고 집집마다 텔레비죤도 보급되지 않았고 조선문 잡지나 신문같은 문화적 식량도 얼마 없었다. 

어느날 내가 하루일을 마치고 저녁 숟가락 놓기 바쁘게 촌민병 무기고의 당직을 서려고 촌사무실에 들어 섰을 때였다. 항미원조 참전 2등 영예군인이며 촌에서 창고 보관원 겸 출납으로 사업하셨던 집안집 친척벌 되는 매형이 신문 한장을 넘겨주는 것이였다. “새로 나온 신문인데 볼만하오 ”반갑게 받아보니 《길림신문》이였다. 

그날 저녁 함께 당직 서는 친구들이 트럼프놀이로 떠들썩했지만 나는 조용히 한켠에서 새로 나온 《길림신문》을 읽으면서 홀딱 매료되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장장 40년을 《길림신문》을 열심히 구독해왔다. 

2001년 도문시로 전근한후부터 한해도 빠짐없이《길림신문》을 주문해 보았다. 퇴직하는 해 단위 령도들이 무슨 부탁이 있는가고 물어볼때 내가 단위에서 해마다 《길림신문》을 계속 주문해달라고 해서 웃긴 일도 있었다. 

《길림신문》은 많은 소식들이 새로웠고 산재지구의 소식들도 볼수있어 좋았고 기사들이 우리와 너무 가까운 일들이여서 좋았다. 

그때 촌에서 공청단서기로 일했던 나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촌 식수 임무를 도맡아 활동 경비를 벌어 들이고 촌지도부의 지도와 방조로 청년도서실도 꾸리고 여러가지 신문 잡지도 구전히 갖추고 문예선전대도 건립하여 청년생할을 풍부히 했다. 

향과 현, 주의 모범 공청단서기로 여러차례 표창을 받았고 공청단총지도 주선진단위로 표창 받았다. 이런 성과를 올린데는 《길림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을 열심이 구독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0년 내가 향정부에서 사업할때도 나의 손에서는 《길림신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 다종경영 부문의 특산과를 책임졌는데 늘 신문에 실린 농업과학지식편을 가위로 오려 큰 목책에 붙여놓고 하향할때면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학습하고 농민들에게 전수했다. 

1991년 내가 향당위 선전위원으로 사업하게 되면서부터 《길림신문》사의 여러 기자선생님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어느날 기관의 문서가 사무실에 찾아와 당위서기가 사무실에서 부르신다고 해서 찾아 가보니 50여세쯤 돼 보이는 지식분자 틀이 다분한 낯선 분이 쏘파에 앉아 계셨다. “길림신문사 리금남 사장님이요. 인사하오.”나는 그때 처음으로 신문사 분들과 면목을 익히게 되였고 그후로는 허동철 부총편집, 윤성환, 최경학, 김청수, 리원철 등 많은 기자분들과 밀접한 래왕을 하게 되였고 그분들도 량수를 자주 다녀 갔다.

어느해 허동철 부총편집이 취재를 왔다. 초대소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그 촌의 당지부서기가 성송권선전위원도 글을 잘 쓰는데 왜 《길림신문》에는 투고를 안하는가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번에 《연변일보》와 《연변방송》에 나간 소식들이 반향이 좋더라고 나를 치하해 주었다. 허동철부총편집은 그런 일도 있었느냐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원고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나도 선생님께서 저의 소원 하나 들어 주십시요 하고 청들었다.그때까지 량수진에는 진가가 없었는데 이처럼 유명한 작사자를 앞에 모셔놓고 이대로 놓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후부터 나는 부지런히 원고를 써서 《길림신문》에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1997년 3월11일 제1면 톱 기사로 실린 기사 <량수진 영화촌과 연길북흥과자공장 '성향련합신용 호조협회 설립' 기사가 호평을 받았다. 당시 농민들이 쌀 팔기 어려웠고 곤난호들에서는 아이들의 학비와 당해의 대부금도 못갚아 안달아 했다. 연길북흥과자공장의 김영숙리사장은 농민들의 이런 곤난을 헤아려 상호 돕는 원칙을 기초로 이 촌과 자매관계를 맺고 촌의 곤난호에 부림소와 새해 생산재료비를 지원했고 촌에서는 5헥타르 논에 생태유기 찰벼를 심고  4헥타르 밭에 팥을 심어 수확한후 몽땅 북흥과자공장에 팔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다른 한편은 1995년 8월에 쓴 <남대촌 농업협회 저마끔 장끼 >라는 기사였다. <양돈협회 남새협회 과수협회 황연협회 여덟신선 닐리리 바다 건느네> 란 제목으로 보낸지 얼마 안돼 인차 신문에 발표되면서 '편집자의 말'까지 함께 실었다.

신문 방송에 100여편의 기사를 썼으나 이렇게 '편집자의 말'까지 추가된 문장은 극히 적었다. 그해 나는 《길림신문》의 특약통신원으로, 그리고 신문사의 추천으로  동북3성 조선말방송 신문 표창대회에까지  참가하여 '우수통신원'으로 표창받았다. 

《길림신문》사 기자분들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서로의 감정도 깊어졌다. 그리하여 리원철 부사장을 모셔놓고 통신원 강습반도 여러차 꾸렸고 허동철부총편집이 작사하시고 방룡철선생님의 작곡한 량수진 진가도 만들었다. 해마다 량수진운동경기대회에서 몇백명의 녀성들이 색다른 고운 치마저고리를 받쳐입고 진가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하향하는 기자들이 헌신적인 정신 , 실사구시적인 사업작풍은 정말 인상깊다. 

한번은 허동철 부총편집을 모시고 동산촌탄광에 취재하러 갔는데 그냥 탄광에 내려가 보시겠다고 하여 수직갱이 100여메터나 되는 위험한 막장에까지 내려가시는 것이였다. 김청수기자가 도문시에 많이 다녀왔는데 늘 우리 향진기관 간부들과 함께 논도랑 가셔내는 임무로동에도 동참하고 빈곤호의 벼가을도 같이 하면서 특수화가 없었다. 더우기 내가 좋은 기사 재료를 제공하면 당사자를 현지취재하고 기사를 쓸 때면 꼭 나의 이름을 앞에 놓고 발표를 했다. 내가 쓴 원고도 깔끔이 다듬어주고 어떤 원고는 전화까지 걸어와 자세히 대조하여 한편도 허실없이 해주시고 부족한 점도 편지나 전화로 일깨워 주시군 했다. 나도 연길에서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표를 부탁하군 했는데 리원철사장이 점심도 사주면서 이미 퇴직한 허동철선생님과의 뜻깊은 상봉의 자리도 마련해주는 혜택도 누렸다. 나도 그 정을 못이겨 새해 신문주문이 시작되면 적극 홍보에 나서군 했다. 그때 우리는 함께 모여 앉으면 《길림신문》을 그냥 '우리 신문'이라 친절하게 불렀다. 

새해 신문주문은 보통 11월부터 시작된다. 농민들이 쌀을 팔아야 손에 돈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저녁퇴근 시간에 우정국 국장의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량수진 산하의 13개 촌을 찾아 다니면서 주문을 받았다. 그때는 여러 잡지사와 신문사들에서 내려오는 주문임무가 많았다 .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길림신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문, 잡지들의 주문임무를 철저히 완수하여 몇년간 시선전부와 시우정국의 우수 발행원으로 표창 받았다. 어느 해인가는 《길림신문》주문량을 300부까지 끌어 올린 일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감개무량하다. 《길림신문》과 함께 한 나날이 바로 나의 청춘시절이였고 그와 함께 한 나날이 바로 나의 성장의 시간들이였다. 지난날 《길림신문》에 나의 저그마한 기여라도 있었다는건 잊을수 없는 추억이고 자랑이다. 

창간 40주년을 맞는 《길림신문》이 거둔 휘황찬란한 성과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향후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编辑:안상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400
  • 최근 안도현자연자원및림업국에서는 한 시민으로부터 "안도현 명월진 복만촌 린근에서 '노루'가 차에 치여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다."라는 구조요청전화를 받았다.신고를 접수한 사업일군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동물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노루가 아닌 국가2급 보호동물인 고라니(獐子)로 판정되였다. 입...
  • 2025-04-15
  • 착공식 현장 장면4월 7일, 심양시 우홍구 홍흥로소학교(원 오가황조선족중심소학교) 교정내 조선의용군 오가황회의유적지 교육기지 착공식이 거행됐다.착공식에는 성, 시, 구 관련 단위 관계자와 사회 각계 인사, 항일전쟁 참전 로병사 가족, 당사 전문가, 사생 대표 등 도합 60여명이 참가하여 력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조...
  • 2025-04-15
  • —연변우대무휼병원, 오는 9월 말 준공될 예정연변우대무휼병원 대상최근 연길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첨단 복합병원인 연변우대무휼병원 대상이 9월 준공을 앞두고 공사진척을 다그치고 있다. 이 대상이 준공되면 병원은 연변의 최초의 종합재활병원으로 우대무휼대상자와 퇴역군인들에게 의료와 양로를 통합한 고품질 건...
  • 2025-04-15
  • 4월 8일, 길림입쌀, 길림선식옥수수 봄철 마케팅선전활동 및 공용브랜드 광고어 발표의식이 장춘에서 있었다. 행사에서는 "천연적이고 품질좋은 길림입쌀은 록색이기때문에 뛰여납니다"(好在天然、贵在品质,吉林大米 因为绿色 所以出色)와 "일대금황, 하늘이 내린 선물, 길림선식옥수수가 여기서 당신을 기...
  • 2025-04-15
  • 어둠이 내리고 화려한 등불이 밝아오면 장춘은 또다른 매력을 뽐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밤하늘 아래 도시의 륜곽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인다. 시민들로 북적이는 야시장에서 상인들의 활기찬 웨침과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다. 장춘의 밤은 활력과 랑만, 생활의 정취와 현대감이 융합된 공간이다. 사진을 통해 ...
  • 2025-04-15
  •  (연길)리명자초가도 그대로고뜨락도 그대로 인데머리 푼 버드나무는한세기를 넘겼구나마루엔고무신 한쌍떡방아를 지키네고향색바랜 사진 한장기억이 아련한데동구밖 키 큰 나무그늘이 할매 쉼터 한여름부채 바람이옛날 체취 실었소꽃샘 추위엊그제 웃던 하늘갑자기 변덕부려추위 속 떨던 가지눈물로 얼어붙네가엽...
  • 2025-04-15
  • (서란)배영춘바다에 던져진 그물은 고기를 잡기도 하고, 때론 파도에 휩쓸려 허망하게 돌아오기도 한다. 인연도 그러했다. 단단히 묶어둔 줄 알았던 매듭이 어느새 손끝 사이로 스르르 흩어질 때, 나는 그물망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고기를 떠올린다. 잡힐 듯 놓칠 듯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정은 어쩌면 인생은 그물을 던지고...
  • 2025-04-15
  • (연길)리성호그날도 나는 복권점으로 향했다. 허망한 꿈인 줄 알면서도 유혹을 떨칠수 없다. 일확천금을 획득하려는 욕망 때문에 마음 한구석 충동의 포로가 된다. 가끔 자신의 나약한 의지에 화가 날때도 있지만 요행이라는 실날같은 희망의 끈에 유혹되는 자신을 주체할수 할수 없다.복권점에 들어서니 복권 구매자들이 삼...
  • 2025-04-15
  • (연길)리정희 오늘 석양을 바라보며 문득 사색에 잠긴다. 석양은 왜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가? 해가 서산에 다달은 순간, 하늘은 온갖 색갈로 물들어 마치 화가가 붓을 휘둘러 그린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다. 주황, 분홍,금빛이 어우러져 저녁하늘을 수놓은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황홀하다. 석양이 강물우...
  • 2025-04-15
  • 일전 제5회 중국국제소비품박람회가 해남국제회의 전시쎈터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전시관 내에는 71개 국가와 지역의 4,100여개 브랜드가 전시장을 메웠는데 각 국의 참가업체, 구매상 및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번 행사에서 길림전시구의 장백산 인삼이 독특한 주제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길림전시구에서는 전...
  • 2025-04-15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